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래프트 세대 (문단 편집) == 상세 == '''[[https://pgr21.com/pb/pb.php?id=free2&no=56024|[스타1] 격동의 2007 시즌 : 드래프트 세대 라이즈]]''' 초창기 [[e스포츠]]판은 지금처럼 체계적인 구조와 선수 선발 제도가 잡혀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게임단은 게이머들간의 연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구성된 [[길드]](혹은 [[클랜]])가 확장된 개념에 가까웠으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와 같은 팀간의 경쟁 체제 또한 없었기 때문에 감독 및 모기업과 같은 제도 또한 매우 부족했다.[* 사실 거의 선사 시대 수준인 1999~2000년만 하더라도 조기에 이런 체제가 갖추어지고 있었다. 당시 스타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달리고 너도나도 프로게이머가 되고자 하면서 이들이 속한 게임단과 리그만 수십개에 달했으며, 프로리그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리그와 게임단 모두 어엿한 스폰서까지 갖춘 나름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2000년도 말 [[IT버블]]이 꺼지고 스폰서나 리그를 개최하던 기업들 상당수가 철수하거나 아예 부도가 나버리면서 순식간에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게임판 자체가 박살나버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한 e스포츠 종목 대부분은 얼마 못 버티고 사라졌고, [[워크래프트 3]]가 나올 때까지 거의 스타크래프트만이 유일한 e스포츠 종목으로 남았다. 수십개에 달하던 게임단 역시 대부분 사라졌고, 리그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MBC GAME 스타리그]]를 중심으로 한 양대리그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팀리그]] 등의 팀 단위 대회로 재개편되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한국e스포츠협회|협회]] [[프로게이머]]와 비협회 프로같은 기준이 없어서, '프로게이머'란 그저 많은 게이머들 중에서 실력이 출중하여 게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상금을 타갈 수 있는 게이머 정도의 위치였으며, 프로 게이머를 선발하는 방법 역시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어느 팀에 소속된 게이머나 감독이 뛰어난 실력으로 입소문을 탄 비 프로를 수소문하여 데려오는 등의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3년 경 [[팀리그]],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2005년부터 [[온게임넷]]과 [[MBC GAME]]의 양대 게임 방송사가 하나의 프로리그를 주관하게 되었으며, [[KeSPA]] 가입 절차가 생겨나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각기 다른 방송사와 단체에서 주관하던 여러 게임 대회가 사실상 양대 개인 리그 주관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게임 리그로 통합되었고[* 이 과정에서 양대 리그에서 주관하지 않았던 여타 리그의 전적들은 모두 [[KeSPA]] 비공식 전적으로 치부되게 되었다. ~~그리고 졸지에 엄연한 우승 경력자였던 [[홍진호|모 게이머]]께서는 [[콩라인]]의 시조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양대 리그 이외의 리그들이 모두 비공식으로 치부되어버린 것은 결코 이들이 OSL, MSL에 비해 규모가 작거나 권위가 낮은 듣보잡 리그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극초창기만 해도 이들 중 상당수는 OSL 이상으로 권위있고 거대한 리그들이었다. 최초의 리그인 [[KPGL]]을 비롯해 [[KIGL]], [[KGL]], PKO 등의 3대 메이저 리그가 모두 당시에는 KeSPA 등록 공인 대회였다. 그러나 [[IT버블]] 붕괴로 인한 혼란기 이후 게임판이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들 리그가 모두 사라지면서 관련 자료를 찾기조차 어려워져 버렸고, KeSPA 측에서도 이미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들 리그들의 자료를 찾는 수고를 들여가면서까지 이들을 공식전으로 인정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많은 프로게이머들과 게임단들을 하나로 묶어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 이에 따라 프로게이머들을 선발하는 제도 또한 기존의 추천 및 캐스팅과 같은 원시적인 형태가 아닌, 커리지 매치라는 공개적인 프로 게이머 선발 대회를 통해 뽑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게임단들 역시 거의 대부분이 스폰서를 두고 감독과 코칭 스태프 등의 인사와 합숙 및 전략 전술 교류 등의 방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소속 게이머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리그가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구단에서 연봉을 지급하는 등 직업적 안정화가 이뤄지자 프로게이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으며, 이는 프로게이머의 질적/양적 팽창을 가져오게 된다. 2008년에는 등록 프로 게이머가 무려 500명을 돌파했는데, 이들 뿐만 아니라 준프로, 온라인 연습생, 커리지 매치 참가자, 클랜마스터가 숙소를 잡고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모아 연습하는 일종의 '[[프로게이머 학원]]' 단체까지 등장하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프로 게이머 인재풀'''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데뷔하게 된 드래프트 세대들은 신인들이 다 그렇듯 데뷔 초반에는 대부분 기존에 게임판을 휘어잡고 있던 일류급 올드 게이머 세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험과 게임 이해도도 부족했고 방송 경기에 적응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다 그렇듯 창의성과 응용력 또한 떨어져 기존의 게이머들에 맞설 마땅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와 오랜 기간을 거치며 쌓인 기존 게이머들의 노하우를 체계화된 선수 육성 방식이라는 제도와 결합시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무엇보다 우수한 이점이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차츰 올드 게이머 세대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신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조짐은 2006년부터 나타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 접어들면서 이미 올드 게이머 세대 멤버를 주력으로 한 [[kt 롤스터/스타크래프트|KTF 매직엔스]]와 [[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SK텔레콤 T1]]의 성적은 저조해진 반면, [[르까프 오즈]], [[MBC GAME HERO]] 등의 신인들이 중심이었던 팀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3일, 스타판의 대격변을 알린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3.3 혁명]]이다. 드래프트 세대가 차츰 올드 게이머 세대를 밀어내고 있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엄청난 포스를 보이며 본좌라고 인정받고 있던 [[마재윤|마모씨]]를 상대로[* 마모씨는 2003년 데뷔한 올드 게이머이다.], 이전까지 촉망받고는 있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던 듣보잡 [[김택용|코큰 토스]]가 [[마재윤|마주작]]을 일방적으로 관광을 보내버렸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나마 엇비슷하던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 간의 전력 격차는 확연하게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 후, 안 그래도 이전에 비해 부진한 성적으로 우려를 샀던 기존의 강호 KTF[* 특히 KTF의 비교적 확실한 카드이자 억대 연봉을 받던 [[강민]], [[박정석]], [[홍진호]]는 잠시 복귀했던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와 더불어 [[패왕라인|패왕사신기]], KT 노인정스(...)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으며 KTF의 흑역사를 쓰게 되었다. 올드 네임드 선수들이 아직 많이 포진해 있고, 이영호를 주축으로 한 신세대로 세대교체를 하기 전까지 2007년의 KT는 팀 역사상 최약체였음은 물론, 연봉 대비 성과 소위 가성비는 더욱 나빴다.]와 SKT T1[* 역시 올드 게이머인 [[최연성]], [[박용욱]], [[박태민]] 등이 있었다.]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렸고, 르까프와 MBC GAME은 물론, 2006년에 부진했던 [[삼성전자 칸]]이나 완벽한 약체였던 [[STX SouL]], [[온게임넷 스파키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전자는 한 때는 '''저그 군단'''으로 불릴 정도로 강했으나 부진한 경우, 후자는 한때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 앞에서 소개된 KTF를 '''상대로''' 우승할 정도였으나 그 이후 부진해진 경우다.]가 포스트시즌에 올라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게 된다. 이처럼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 간의 관계와 세대 교체가 되는 모습은 e스포츠 내에 있었던 어떤 세대 교체 과정보다도 극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브루드 워]]판은 크게 볼 경우,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라는 2개의 세대로 나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준 예시가 3.3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올드 세대 내에서도 세대 교체는 여러 번 있어왔고[* 대표적으로 [[신주영]], [[이기석]], [[김캐리]], [[국기봉]], [[최진우]], [[기욤 패트리]] 등, 방송 경기보다는 래더나 국제 대회 등에서 활동하던 세대 및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 [[강도경]], [[김정민(게임 해설가)|김정민]],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프로게이머)|조정현]], [[김현진(e스포츠)|김현진]], [[임성춘]] 등의 드래프트 세대가 떠오르기 전 이미 은퇴하거나 하락세에 접어들었던 게이머가 있다. 이런 흔히 스타판 고대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가 도입되는 시기쯤 은퇴하거나 기량이 크게 하락한다. 프로게임 씬이 아마추어리즘에서 진정한 프로화의 길을 걸은 것이 이 시기이다.]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도 올드와 신예가 갈리며 수많은 게이머들이 그 안에서 데뷔하고 떠오르며 도태되어 갔지만, 이 시기만큼 대대적인 격변이 일어났던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에도 [[Gillette 스타리그 2004]]를 기점으로 한 '질레트 세대'로 불리는 박성준이나 전상욱, 한동욱 등 새로운 게이머들이 유입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들도 [[사대천왕]]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게이머들을 완전히 압도할 수는 없었다.[* 질레트 세대의 주역 중 1명인 박성준의 최악의 천적은 사대천왕의 일원인 이윤열이다.] [[임요환]]이 비슷한 세대인 [[장진남]], [[홍진호]], [[김동수(프로게이머)|김동수]], [[박정석]]과 결승전에 붙은 다음에 게이머 커리어 중반기에는 더 늦게 데뷔한 [[최연성]], [[오영종]]과 결승전에서 붙고, 심지어 [[이윤열]]은 [[홍진호]], [[박정석]],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 [[강민]], [[최연성]], [[박태민]], [[박성준(1986)|박성준]], [[오영종]], ~~[[마재윤]]~~과 모두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2007년의 대격변은 드래프트 세대 이전의 모든 게이머들을 한꺼번에 [[올드 게이머]] 세대로 묶어버릴 만큼 충격적인 변화였다'''. 즉, 스타판의 태동을 본격적으로 불러온 임요환과 드래프트 세대가 부상하기 직전에 무적 포스를 보여준 --마재윤--이 모두 다 올드 게이머라는 하나의 세대로 묶일 만큼 거대한 격변이였던 것이다. '''2007년 당시에는 스타판 매니아들 대부분은 아직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였고, 일시적인 슬럼프나 노쇠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2006년만 해도 8강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던 선수들이 단 1년 만에 16강 통과도 버거워진 상황은 단순히 나이로 인해 기량이 줄었다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주 5일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로 인한 과도한 선수 혹사'나 '프로 게이머의 상향 평준화' 정도를 문제로 지적했다. 하지만 주 5일제가 보편화되고 초기 데뷔한 드래프트 세대들이 슬슬 노장의 반열에 들어간 2012년 시기에도 [[택뱅리쌍]]은 여전히 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두 지적 역시 후대에 와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지어 드래프트 세대 가운데는 2010년 중후반이 지나 [[스타크래프트 2]]라는 시리즈만 같은 완전히 다른 게임에서도 활발하게 활약하는 게이머들[* [[전태양]], [[이신형]], [[김대엽]], [[어윤수]] 등]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드래프트 세대에 대한 재인식은 ~~[[마재윤]]~~에 대한 평가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6~2007년 시점의 ~~마재윤~~에 대한 평가는 '내로라하는 테란 본좌들의 도장깨기에 성공하고 1인자에 오른 자'였는데, [[3.3 혁명]]을 기점으로 그가 급격히 몰락하고 종내는 범죄에 손을 대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그저 ''''올드 게이머 세대와 드래프트 세대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잡으면서 제대로 꿀을 빤 자''''라는 인식으로 바뀐 것이다. 다만 이는 그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인식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마재윤~~이 이룬 업적 모두를 폄하하려는 움직임이 만들어낸 과도한 평가 절하에 가깝다.[* 사실 이런 평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전성기를 맞은 이후 성적이 급락한 점도 한몫할 것이라고 본다. 역대 본좌 중 단기간에 이렇게 참혹하게 몰락한 사례가 없기 때문.] 그가 두 세대 사이에서 꿀만 빨았을 뿐이라면, 같은 시대에 그를 당해내지 못하고 죄다 나가떨어진 수많은 게이머들은 꿀빨 능력조차 없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프로게이머나 스타팬들은 그가 범죄를 저질렀을지언정 세운 업적만큼은 부정하지 않는 추세이다. 물론 마재윤이 확실한 엄청난 기량을 가졌던 것도 맞고 동시대 타 선수들을 나가떨어트린 업적도 맞다. 다만 그의 커리어가 시운을 다소 탔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시운은 그가 결국 [[3.3 혁명|기적적인 결승전 패배]] 이후 급속도로 추락하는데 제공을 했으니 결국에는 양날의 검이였다.] 그가 실력이나 업적이나 어느 면으로도 전설적인 선수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와 호각으로 겨룰만한 포텐셜을 지닌 선수, 특히 테란 선수가 같은 세대(올드 세대 최후 세대)에 등장하지 않은 것[* [[한동욱]],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 [[변형태]] 등의 테란 강자들이 있긴 했지만 다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에 비하면 다들 조금씩 아쉬운 선수들이었다.]에 대해 설명을 할 때는 시대상의 특징이 빠질 수 없다. 2007년의 대격변은 나이나 혹사에서 온 문제가 아니라 '''드래프트 세대가 [[올드 게이머]] 세대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계에 이른 피지컬과 하루 30~40게임을 우습게 넘치는 엄청난 연습량으로 인해 프로게이머의 부상 문제도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공을 던지는 현대의 강속구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엄청난 연습량으로 유명한 [[이제동]]과 [[이영호]]는 고질적인 손목 부상에 시달렸고, 이제동은 피지컬 하락을, 이영호는 수술 후 고된 재활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이영호는 이 문제 때문에 병역마저 [[사회복무요원]]으로 갔다.] 물론 이전에도 손목 부상으로 경기력이 악화, 은퇴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었으며, [[손목터널증후군]]은 이미 프로게이머의 직업병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프로게이머의 재활이나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어 크게 화두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게임단에서 헬스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도 몸 관리해서 팬 모으고 하루종일 앉아 있지만 말라는 정도 의미였으니 조금 의미가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